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February 2026
할머니 장례식을 잘 마치고 왔다.
감사하게도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할 시간이 있었다. 두 달 전에 병원에서 한번 뵙고, 삼 주 전에 아빠를 모시고 한번 뵙고, 관으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골의 형태로 한번. 네 번의 만남. 네 번의 작별. 매번 할머니는 조금씩 다른 형태였지만, 매번 할머니였다.

첫 방문에서 할머니는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를 부르셨다. 92세, 병상에서.
그때 깨달았다. 할머니를 할머니로 만드는 것은 몸이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던 기억, 명절마다 나누던 이야기, 손을 잡았을 때 전해지던 것—그 관계의 패턴이 할머니였다. 그리고 몸은 사라지지만, 함께 만든 이야기는 영원하다는 직감이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다. 나이가 들수록 더. 대부분의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시간이 손안에서 흘러나가는 느낌. 슬픔에 가까웠다.
한번은 상담사와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짧은 인생에서,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싸우고, 왜 같이 있지 못하는가.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안에 있던 무언가를 처음으로 밖으로 내뱉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함께할 수 있는 매 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슬픔이었다. 그때는 그 이름을 몰랐을 뿐.
외할아버지는 일흔 초반에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라 장례식은 울음바다였고, 그 충격이 오래 남았다. 거제도 할아버지는 내가 유학 중에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작별 자체가 없었다.
할머니는 달랐다. 92세까지 사시고, 네 번에 걸쳐 작별할 시간이 있었다. 장례식의 분위기도 달랐다. 슬픔의 눈물보다, 잘 보내드렸다는 느낌. 열심히 잘 사셨다는 감사. 호상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할머니가 완벽한 삶을 사신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돈에 악착같으셨다. 모으고, 아끼고, 또 모으셨다. 가족들이 답답해할 정도로. 하지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셨다.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잘 사셨다"는 업적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말이었다.
예전에 나에게 memento mori는 경고였다. 죽음이 오고 있다, 유통기한이 다가온다, 그러니 최고의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일종의 강박. 죽음을 마감 기한으로 본 것이다. 그 프레임에서 삶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잘 했느냐"로 측정되고, 죽음은 그 측정을 끝내는 적이 된다.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그 프레임이 바뀌었다. 장례식에서 내가 느낀 것은 끝이 아니었다. 관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음이 마감 기한이 아니라면, 삶은 시험이 아니다. 최적화해야 할 성과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삶은 무엇인가.
몸은 사라진다. 목소리도, 체온도,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도. 하지만 함께 만든 이야기의 구조는 한번 존재한 이상 없어지지 않는다. 엄밀한 논증이라기보다, 장례식장에서 붙잡은 직관이다.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고, 둘러앉아 웃던 그 구조는 존재한 순간 영원해졌다.
장례식 첫날, 첫 예배에서 조문객들과 그 찬송을 다같이 다시 불렀다. 병상에서 할머니가 부르신 그 노래를. 이번에는 할머니가 안 계셨지만, 노래 안에서 우리는 다시 같은 자리에 있었다. 찬송 하나가 시간 두 개를 겹치게 만들었다—병원의 그때와 장례식의 지금이 같은 순간이 되었다.
장례식 중에, 오래된 거제도 영상을 찾아서 친척들과 같이 봤다. 엄마가 거제도 할아버지 회갑 때 비디오 카메라로 찍으신 것이다. 외국에 있는 아빠에게 보여주려고. 아빠가 나중에 디지털화하셨고, 그 영상이 내 드롭박스에 남아 있었다. 35여년 전 영상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 손주들과 가족들이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웃고, 떠들고, 시끄럽고.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울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냥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큐멘터리 같았다.
30년 전 화면 속의 그 장면과, 명절마다 할머니 집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내 기억이 겹쳤다. 사람은 바뀌고, 아이들은 자라고, 누군가는 떠났지만, 구조는 같았다. 함께 모여 앉아, 먹고, 웃고, 떠드는 것.

그 영상이 남아있던 건 운이었다. 하지만 영상이 없었어도 그 오후는 존재했다. 기억하는 것과 일어난 것은 별개다. 기억이 쇠퇴하고, 기록이 유실되어도, 일어난 일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학에서 증명된 정리를 아무도 적어두지 않아도 그 정리가 참인 것처럼. 이야기의 구조는 그것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영원한 것이 아니다. 존재한 순간 영원해진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지 않아도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되지 않아도, 목격자가 없어도, 일어난 일은 영원하다. 관객이 필요 없다.
하지만 이 논리는 양날이다. 선한 일이 영원하다면, 상처도 영원하다. 내가 공감하지 못한 순간, 함께하지 못한 장례식, 놓쳐버린 것들—그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이 곧 천국은 아니다. 영원 속에 치유와 회복이 없으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 감옥이다. 성경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영원한 것들 가운데서, 상처를 안아 치유하는 임재가 있어야 비로소 천국이 된다.
장례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작은고모부가 아빠에게 물었다. 물리학자이신 형님에게 묻겠습니다—영원과 천국은 무슨 관계인가. 나는 아빠 옆에 앉아 그 질문을 들었고, 이후로 계속 생각했다. 함께 만든 이야기가 영원하다면, 그 영원한 것들이 거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천국은 그 자리가 아닐까—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패턴들이 모여 있는 곳.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성경은 천국을 여러 방식으로 그린다. 요한계시록의 진주 문과 금 거리[^1] 요한복음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2] 하지만 내가 읽기에 그 모든 묘사의 핵심에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3]. 장소가 아니라 함께 있음. 건축이 아니라 임재.
그 임재가 구현될 때, 성경이 보여주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를 채우고[^4], 잃은 양을 찾으면 함께 기뻐하고[^5], 부활한 뒤에는 해변에서 생선을 구워 먹었다[^6]. 동시에, 마리아를 이름으로 불렀고[^7],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함께 울었다[^8]. 부활시킬 수 있으면서도 먼저 함께 슬퍼했다.
장례식에서 찬양 중에 "위로"라는 가사가 나올 때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이미 거기 있던 무언가가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사 앞에서 울었을 때도 같았다—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고, 누군가가 거기 있었다. 장례식에서 "위로"라는 단어가 왔다. 이름 없이 떠돌던 것이 비로소 인식되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이름으로 부른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존재를 알아봐 주는 것.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알고, 함께 앉아 밥을 먹고, 기쁠 때 같이 웃고, 고통 앞에서 같이 울어주는 것. 기쁨이 천국의 내용이라면, 고통 앞에서의 함께함은 그 천국이 진짜라는 증거다. 잔치의 포도주와 무덤 앞의 눈물, 둘 다 천국의 재료다.
장례식 첫날, 엄마가 운영하시는 세빛학교 30여명 선생님들이 오후 5시에 출발해서 네 시간을 달려 밤 9시에 도착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날 밤 다시 돌아갔다. 왕복 여덟 시간. 엄마 형제분들도 서울과 대전에서 네다섯 시간을 운전해 오셨다. 돌아가신 분은 그분들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시어머니도 아니었다. 그런데 왔다. 의무만으로는 여덟 시간을 운전하지 않는다. 그건 그 관계 안에 쌓인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천국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도착지가 아니라 생성의 과정이다.
성경의 첫 장에서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만드는 분이라는 것[^9]. 그 형상대로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 안에도 만드는 자의 성질이 있다. 에덴에서 주어진 첫 번째 명령도 그곳을 "맡아서 돌보라"[^10]는 것이었다. 원초적 천국조차 완성품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가꿔야 할 것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성경은 그 방법까지 말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11]—서로 사랑한다, 임재가 실현된다, 천국이 구현된다. 사랑은 천국의 목적이 아니라 천국을 생성하는 방법이다.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12]. 이것이 천국을 짓는 설계도다.
할머니가 부르신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잠시다. 태어남과 죽음은 주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매일이 있다. 매일의 선택들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태어남과 죽음은 받아들일 것. 그 사이의 매일은 용기를 내어 선택할 것.
매일 그 선택들이 온다. 일찍 자는 것.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아들과 한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 아내의 잔소리와 짜증 뒤에 있는 것—친밀함에 대한 갈구, 알아봐 달라는 신호—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관습을 존중하고 행하는 것. 천국은 그 매일의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 중 어떤 것은 한 번만 온다.
아내의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가셨다. 우리는 뉴욕에 있었다. 나는 친구와 고깃집에 갔다. 함께 가기로 한 자리였는데,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직까지 그녀에게 상처다. 친한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학생이라는 이유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친한 친구들의 결혼식도 못 간 것이 여럿이다. 거제도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들이 천국을 만드는 기회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회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달랐다. 아빠는 몸이 불편하셔서, 할머니가 계신 부산 병원에 갈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셨다. 나는 바로 쿠팡에서 휠체어를 주문하고, SRT로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동생 세령이와 셋이서 할머니를 뵈러 갔다.
할머니의 다리는 부어 있었고, 피부는 건조해서 마르고 거칠었다. 손으로 누르면 푹 들어갔다. 세령이가 고기죽을 떠서 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홍시도. 할머니는 끝까지 잘 드셨다. 내가 다섯 살, 세령이가 한 살이었을 때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 주셨다. 그때는 할머니가 세령이를 먹이셨을 것이다. 30년이 지나 세령이가 할머니를 먹이고 있었다. 돌봄의 방향이 뒤집혔지만, 떠먹이는 손의 구조는 같았다.

할머니는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를 부르셨다. 92세, 병상에서, 가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그 찬송을 따라 부르며 나와 세령이, 아빠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 안에 있었다.
할머니와 아빠는 별로 말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 침묵, 서로 잡은 손, 바라보는 눈빛—그 안에 인생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루미가 썼다—"봄의 정원으로 오라 /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꽃도, 술도, 촛불도 없었다. 병원 침대와 휠체어와 침묵뿐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왔으므로,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선택이다. 이건 지금 아니면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세빛학교 선생님들이 왕복 여덟 시간을 운전한 것도 같은 앎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삶이 그 설계도대로였다.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들은 이야기다. 추모공원 2층 라운지에 유족들이 흩어져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여동생 군자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으셔서 다가가 앉았다. 아빠와 작은아버지가 아기였을 때, 할머니는 먼 친정집까지 걸어가서 흰밥을 얻어다 먹이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수십 년 뒤, 할머니가 평생 모으신 자원 덕분에 나와 동생들은 미국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자신은 걸어서 30분 거리를, 천 원짜리 버스를 타면 5분이면 되는 거리를 늘 걸어다니셨다.
그 악착같음이 답답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손주들의 미래가 되었다. 선언이 아니라 축적이었다. 한 번의 희생이 아니라, 매일 천 원을 아끼고 매일 30분을 걷는 것의 총합이었다.
셋째 할아버지의 아내 명규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와 함께 거제도에서 가정을 일으킨 이야기를 들었다. 군자 할머니가 말했다—"치열하게 살았데이. 돼지 키워서 팔고, 형제들 동서들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줬다. 자원해서." 7남매의 맏딸로서 할머니가 짊어진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무게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시집 식구와 친정 식구 양쪽에서 존경받는 사람. 그것은 모든 관계에서 천국을 만들어 온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할머니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으셨다. 신학을 모르셨을 수 있다. 천국을 논증하지 않으셨다. 선이 무엇인지 분석하지 않으셨다. 에덴에서 아담이 선악을 알기 전에 그저 동산을 가꾸었듯, 할머니에게는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간극이 없었다. 이론이 필요 없는 삶이었다.
나는 다르다. 나는 천국의 구조를 탐구하고, 임재의 의미를 사유하고, 사랑이 천국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까지 논증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 루틴이 아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
장례식에서 엄마가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정말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익숙한 잔소리.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엄마가 보시는 것은 내 삶의 일부분이고, 어쩌면 편향된 단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가 볼 수 없는 차원을 보고 계신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면을 보고, 엄마는 밖에서 드러나는 것을 본다.
야고보서의 경고가 울린다. "귀신들도 믿고 떱니다"[^13].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14]. 바울도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15]라고 했다.
혼자 사유하는 것은 닫힌 시스템이다. 거울을 거울에 비추는 것과 같다—반사는 무한하지만, 새로운 상이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이다"[^16]. 기도는 자기 바깥을 향한 대화이고, 성경은 자기가 쓰지 않은 텍스트다. 내 프레임 밖의 입력. 사유는 그것을 소화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글 자체가 증거다—할머니에 대한 사유가 있었고, 성경 텍스트가 있었고, 둘이 만나 여기까지 왔다.
그것이 루틴이 아니면, 관계는 끊기는 것이 아니라 부식한다. 결혼식 날의 서약이 진심이어도, 매일 사랑을 확인하지 않으면 같은 집에 살면서 각자의 방에 있게 된다. 씨앗은 한 번 심으면 되지만, 물은 매일 줘야 한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떠내려가지 않습니다"[^17].
할머니는 말라가지 않으셨다. 92세에 찬송가 가사를 하나도 잊지 않으셨다는 건, 그 노래를 평생 부르셨다는 뜻이다. 루틴이었다는 뜻이다. 몸은 줄어들었지만 그 안의 것은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는 이런 질문이다—네가 천국을 논증할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살고 있느냐. 매일 물을 주고 있느냐.
엄마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라"고 하셨다. 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솔직히, 그 표현은 늘 불편했다. "믿습니까?"라는 질문이 때로는 통과해야 할 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흰밥을 얻으러 먼 길을 걸으신 것은 문을 통과한 것이 아니었다. 길을 걸은 것이었다. 천 원을 아끼며 30분을 걸으신 것도 문을 통과한 것이 아니었다. 길 위에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길"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냥 걸으셨을 뿐이다.
예수님은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18]라고 했다.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믿습니까"는 빈 곳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걷고 있는 방향에 이름을 붙이는 초대다. 장례식에서 "위로"라는 가사가 이미 있던 감정에 이름을 준 것처럼.
두 달 전 병원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빠를 모시고 다시 찾아갔을 때도, 관 앞에 서고 유골 앞에 섰을 때도. 지금 돌아보면, 거기에 천국이 있었다.
그리고 명절마다 할머니 집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것, 함께 웃었던 것, 사소한 일상을 나누던 것—그것도 천국을 만드는 일이었다. 흰밥을 먹이려고 먼 길을 걸으신 것도, 천 원을 아껴 손주들의 미래를 만드신 것도, 거제도에서 가정을 일으키신 것도. 그때는 몰랐을 뿐.
함께한 시간, 나눈 이야기, 공유한 기쁨과 침묵. 그 이야기의 구조는 이제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존재한 것은 영원하니까.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들이 뛰어나왔다. 아내가 밥을 차려놓았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우리는 함께 앉아 밥을 먹었다.
[^1]: 요한계시록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인데, 각 문은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2]: 요한복음 14: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내가 말하였겠느냐?"
[^3]: 요한계시록 21:3: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4]: 요한복음 2:1-11: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표적.
[^5]: 누가복음 15:6: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6]: 요한복음 21:9-13: 부활하신 예수께서 해변에서 숯불 위에 생선과 빵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신 장면.
[^7]: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8]: 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9]: 창세기 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10]: 창세기 2:15: "주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1]: 요한일서 4:12: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2]: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13]: 야고보서 2:19: "귀신들도 믿고 떱니다."
[^14]: 야고보서 2: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5]: 고린도전서 13:2: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6]: 잠언 14:12: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이다."
[^17]: 히브리서 2:1: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18]: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19]: 요한계시록 21:4: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